첫 아기를 임신한 여성이 산부인과 병원을 찾았다. 청진기를 통해 쌔근거리는 태아의 숨소리를 들으며 기쁨에 젖어있던 임산부에게 간호사가 던진 말은 충격적이었다.
"낳을 거예요, 뗄 거예요?"
산부인과 간호사가 임신부를 보면 당연히 낙태를 떠 올릴만큼 낙태가 만연하고 있다.
실제로 병원을 찾아와 "떼 주세요"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여성이 흔하다고 산부인과 의사들은 말한다.
낙태 수술을 제한하는 법은 있으나마나다. 수년전 서울 시내 산부인과 의사의 4%만이 낙태시술을 안한다는 조사도 있었다. 
또 한 의료 단체에서는 지방도시에서 실시한 표본 조사를 토대로 전국적으로 한해 1백50만건의 낙태 수술이 행해지는 것으로 추산했다. 
연중 태어나는 신생아가 60만명인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많은 생명이 세상을 보지 못한채 버려지는 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중에는 아들을 가려 낳기 위해 수술을 받는 사례가 포함되어 있지만 무분별한 성접촉의 결과로 이뤄지는 낙태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숫자이다.
낙태 수술의 만연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우리사회의 낙태 불감증과 성에 대한 무지.
한 조사에 따르면 기혼 여성의 80% 가량이 결혼전이나 후에 낙태 경험이 있었다.
심지어는 20번이나 낙태한 여성도 있었다. 낙태 불감증이 심각한 지경인 것이다.
직접 수술을 행하는 의사들의 비윤리적인 태도도 문제가 많다.
서울 시내 한 산부인과 의사는 "원칙적으로 낙태를 반대하지만 양육 능력이 없는 미혼모가 될 처지에 놓인 경우나 성폭행 피해자등 피치못할 사정을 고려해 수술을 해 줄 경우가 많다." 고 말했다.
또 다른 의사는 "의사들이 낙태 수술을 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느냐"고 반문한다.
영아살해나 유기, 민간 요법에 의한 낙태 부작용등 더 큰 사회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낙태 문제에 대해 박모 산부인과 원장은 "낙태 문제는 도덕적인 성생활만 강조해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등 구체적인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즉 졸업을 앞두고 시간 여유가 있는 중고생들에게 임신과 출산 피임등에 관해 산부인과 의사를 초청해 1~2시간 강의를 듣게 하거나 비디오 테이프등을 통해 낙태가 파생하는 문제의 심각성등을 교육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 먹는 피임약을 사용하는 방법을, 남성은 콘돔 사용법을 교육하는 것이 "무조건 안된다"는 막연한 말보다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결혼한 여성들은 낙태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피임에 적극적이지만 10대 20대 미혼 여성들은 낙태를 너무 쉽게 생각하기 때문에 성교육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위 글은 1995.8.26 일자 <병원의 뒤안길 " 성에 대한 무지가 낙태 부른다">라는 제목의 '동아일보 기사이다.
연간 신생아수 60만건 등 한두가지 점만 빼면  요즘의 기사라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내용이다.
특히 산부인과 의사들의 항변이나 해법이라고 제시한 내용, 그리고  당시의 세태 등은 지금과 한치도 다를바 없이 그대로이다.
사회 일각에서 이야기하듯이 사회 인프라에 대한  해결이 낙태율을 낮추기 위해 우선적인 방법이며 그것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낙태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부작용만 있을 뿐이라는 그 분들의  주장이 타당하다면 우리들은 왜  1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런 노력을 안 해 온 것인지 의문이다.
그리고 사회 인프라가  미비하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낙태 줄이기 노력은 기울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전문가들의 사회적 귄리에 걸맞게 어떤 부분에서 자신의 전문가적 책무(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는지 궁금하다.
또한 낙태율이 매우 낮은 선진 외국들은 국가 발생 초기부터 낙태율이 그렇게 낮았거나 아니면 우리가 가진 미혼모의 문제 등 제반 문제를 그들은 처음부터 가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성교육이나 피임 교육등 일부 전문가들이 제시한 해법은 이미 그 당시나 그 이후 지금도 전문가 단체나 보건 당국에서 하고 있는 일이지만 낙태율은 별로 줄어 들지 못했다.
특히 피임 교육이 실효를 거둘 토양을 마련하지 않고 단순히 피임 교육만 한다고 해서 낙태율을 낮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피상적인 접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시다시피 과거 높은 출산율 때문에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여 국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인력과 자금을 투자하여 피임을 적극 권장하였을 때조차 낙태는 별로 줄이지 못했다. 
결국 그런 방법들은 효과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거나 아니면  효과 발휘를 저해하는 다른 방해 요인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낙태에 대한 접근성이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도 쉬운 상태라는 것이다.
낙태라는 확실하고 단 한번에 해결이 가능한 방법을 얼마든지 쉽게 받을 수 있는데 굳이 번거롭고 부담스럽게 여겨지는 성교육이나 피임 교육에 대한 것이 귀에 들어 올리는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 20년 뒤에도 우리나라가 지금과 똑같은 처참한 낙태 공화국의 오명을 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런 노력은 언제 누가 해야 하는가?
대답이 무엇인지는 과거의 실패가 말해 주고 있다.
인간은 과거로부터 배우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과거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집단에게 희망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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