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낙태로 하여 원치 않는 출산을 피하므로 얻는 부담의 경감이나 혹은 이득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1. 여성은 학업을 이어가거나
2. 직장 내에서 자아 실현을 할 수 있으며
3. 출산으로 초래될 건강상 위험을 피해 갈 수 있고
4. 여성으로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훼손당하지 않으며
5. 자신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당당하게 소유하는 것이며
6. 남녀 모두 경제적으로 양육과 교육에 의한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된다.
7. 국가적으로는 늘어나는 출산과 양육에 대한 비용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고
8. 미혼모의 아기나 장애인 아기에 대한 출산과 양육 보조에 드는 비용이나 차별없는 성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외에도 미처 거론하지 못한 많은 이득들이 낙태를 함으로써 얻어지거나 손해가 피해질 수 있다고들 말한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원래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이 출산으로 이어짐으로써 오는 많은 손해들은 낙태를 함으로써 피해갈 수가 있고 그저 임신과 출산 사이에 한번만 개입하면 될 뿐이다.
반면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낙태를 하지 않고 출산을 함으므로써 얻는 이득은
1. 소중한 태아의 생명을 지키고
2. 여성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낙태로 입을 여성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 훼손이라는 것은 모든 여성이 반드시 겪게 되는 것도 아니거니와 또 아예 임신을 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임신한 상태라면 낙태를 하지 않고 출산을 할 경우에 겪게 될 부담과 손해에 견주어 볼 때 그리 크다고 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낙태를 하지 않으므로써 누구나 인정하는 분명하게 확실하고도 유일한 이득은 태아라고 하는 한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뿐이다.
그저 그뿐이다.
낙태를 함으로써 여성이나 가정 혹은 사회가 부담하지 하지 않아도 되는 그 많은 것들에 비하여 낙태를 하지 않으므로써 오는 이득이란 성인과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아닌지 애매하다고 하는 태아라고 하는 존재에 대한 구명이라는 이득 밖에는 없다.
태아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인권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지도 못한다.
누군가 대신 그들의 인권을 지키라고 주장해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태아가 아닌 제3자일 뿐이다.
반면 낙태를 허용해 달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그룹은 여럿이지만 가장 큰 목소리는 여성들에게서 나오는데 여성들은 낙태로 얻는 이득에 있어서 제3자가 아니라 바로 직접 당사자들이다.
당사자와 제3자의 싸움.
말할 수 있는 자와 말할 수 없는 자를 대리한 자의 싸움.
무수한 사회 경제 정치적 이득과 생명이라는 단 하나 가치와의 싸움.
낙태 찬성론자와 낙태 반대론자의 싸움은 이런 것이다.
이 싸움에서 우리 사회와 혹은 인간들이 전자의 손을 들어 주는 것이 인류의 미래를 위해 나은 것이라면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러나 그럴 경우 우리 모두는 단 한가지 사실에 대한 것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나 자신의 생명도 내 의사와 관계없이 다른 사람들 혹은 집단의 필요에 의해 얼마든지 박탈될 수 있다는 점.
그것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태아는 기득권의 사회에서 강한 목소리로 말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고 필요에 따라 수시로 권리를 빼앗기는 약한 처지의 나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즉 성인인 나는 태아의 아바타와도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내가 죽으면 아바타도 죽는 것처럼 내가 태어날 무렵에 내 어머니의 뱃속에 있던 그 존재가 낙태 되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그렇게 지금 어느 어머니의 벳속에 있는 태아가 낙태되어 없어진다는 것의 의미는 미래에 이 세상에 태어나 삶을 영위하였을 누군가의 죽음을 뜻한다.
따라서 태아를 죽이지 말라고 하는 것은 바로 나를 죽이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태아를 죽이지 말라는 것은 살아난 자들의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하다.




글에 추천 기능이 안되네요. 언론에 기고하셨으면 합니다.